광해군 부인 유씨 아들 가계도




2014년이 어느덧 가고 2015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뜻하신 일들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광해군은 34세인 1608년 2월부터  49세인 23년 3월까지 

즉, 15년의 세월 동안의 왕으로 지냈던 세월보다

유배세월이 더 길었습니다. 18이나 되죠.

그렇게 제주도에서 67세로 생을 다합니다.



광해군 부인 유씨와 아들은 인종반정으로 광해군이

유배되는 1623년에 아들이 사약으로 죽게되고 광해군의 

며느리 박씨는 자살하며 유씨는 다음해에 죽음을 맞습니다.


광해군이 62세때인 1636년은 '병자호란'이 발발하는데요

인조반정으로 왕이된 인조14년으로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가

외교적으로 호의적이었던 광해군을 몰아낸 조선이란 나라를

가만 두지 않겠다며 쳐들어 왔는데요. 침공 1년 후 조선은

인조의 삼전도굴욕으로 완전히 굴복하게 되며 강화도 조약까지

맺게 됩니다. 이때 광해군은 멀리 제주도로 보내버립니다.





방계로 전혀 준비안된 왕이 었던 선조는 임진왜란때

멀리 국경을 넘어 도망하였을 때 광해군은 의병들과

사투를 벌이며 나라를 구하는대 공을 세웁니다.


원래는 선조가 광해를 왕위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선조가 55세때 인목왕후 김씨에게서

아들(영창대군)을 얻게 되면서 더욱 왕위계승은

영창대군쪽으로 확실해졌는데요.


만약 선조가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나 지병이 악화되면서 광해군을

왕위로 계승한다는 교서를 내려준 후 바로

승하하게 되면서 광해군은 왕이 된 것입니다.




광해군은 붕당정치로 권력에 혈안이된 신하들과

사력을 다해서 싸운 왕이었습니다.


1608년 왕위에 오른 광해군,

임진왜란때 친형인 임해군을 구출까지 

했다고 하죠, 상당이 난폭한 막장 임해군,

1609년에 유배를 보내는데요..


참고로 임해군은 전쟁시국에 자신의 상에

고기가 안올라 오면 상을 엎어 버리고 

돈 많은 양반의 재물을 빼앗는데 심지어

낫으로 찍어 죽이까지 하는것을 취미로 삼다가

짐승같은 모습에 분노한 국세필,국경인등은

왜군에 넘겨 버리게 되죠.


임해군은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더욱 포악해졌고

심심하면 민가를 뒤 엎고 광해군을 아주 멸시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이렇게해서 광해군은 유배를

보내는데.. 결국 의문사를 당하는데...





만약 국세필등에 의해 임해군이 죽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요.

선조때 부터 시작된 붕당정치의 권렦싸움으로

그래도 인조반정은 막지는 못했을것 같습니다.


사실 '페모살제'라는 폐륜자로 광해군을 몰았던것은

인목왕후 김씨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지고 결국 죽게되는데.. 이로인해 반정을 일으켜

왕이된 이복 조카였던 인조는 요즘 역모로 왕이된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것 같습니다.


실상 인조가 광해군을 폐위시킨 가장 큰 명분은

다름아닌 명나라를 배신했다는 것인데요. 

훗날 청나라가되는 후금과 밀통했다는 것이

가장 큰 명분입니다.  인조가 집권하면서 바로 

시행한것은 광해군과 함께 후금과 외교를 가진

의주부윤과 평안감사를 죽이는 것이 었습니다.


끝으로 광해군 업적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왜군이 쳐들어 왔을 당시 선조는 도망가기에

바빴으나 광해군은 남쪽으로 내려가 의병들과 함께 

전투를 벌인것과 대동법일 것입니다.


또한 성곽을 높이 쌓고 무기를 정비하고

당시 동의보감 편찬과 토지대장과 호적대장을

정비하고 명나라와 후금과의 중립적인 외교를 통해 

앞날을 바라보았던 혁신적인 왕이 었음에는

 틀임없었던것 같습니다.





Posted by e-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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