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정치가 윤치호

 



1865 ~ 1945, 윤치호는 한말 정치가이며 계몽운도가로

일제하에서 선교활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했습니다.

출생은 충남아산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남감리교회 신자이도합니다.

 

개화운동을 일찌기 투신하여 1881년 신사유람단을 따라서 일본을

다녀왔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미수호조약(1883) 대 주한미국공사 푸트(L.H)의ㅣ 통역관도 했습니다.

 

갑신정변(1884)으로 인해 개화인사라는 의심을 받게되면서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하였고 중서서원에서 3년간 공부하였으며

그곳의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도교가 됩니다.

 

신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윤치호는 A.J.앨런 선교사의 주선을 받아

미국으로 다시가서 벨더빌트대학, 에모리대학에서 인문사회학, 신학,영어등을

공부하게됩니다. 1895년에는 조선으로 귀국하여 총리대신 비서관을 지냈고

학부협판이 되었지만 춘생문사건으로인해 투옥 되고맙니다

 

서재필,이상재와 같이 독립협회를 조직하게되는 때는 다음 해인 1896년입니다.

1896년에는 독립신문사 제2대 사장을 지냈고 천안군수 등을 지냈습니다.

 




또한 교육사업에도 힘을 썼습니다. 1906년 장지연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한것이 그것입니다. 1910년에는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조직합니다. 또한 한영서원(1908, 후에 송도고보)을 설립하고

대성학교의 교장으로 있었습니다.

 

윤치호는 1911 105인 사건으로 인해 10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기도 합니다.

일본은 지식층을 끊임없이 협박하고 유혹하고 가만히 두지

않는것 같습니다

 

윤치호는 말년에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을 지내게 됩니다. 그 이후의 삶은 불운합니다.

1945년 독립후 친일파를 사면, 석방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11월 치아통증으로 치과 진료를 받고 오는 도중 길에서 

갑자기 졸도함으로 쓰러진 후 12 9일 개성에서 

뇌일혈로 사망하게 되는데 그나 남긴 유언은

아이러니 하게도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친..파와  ....자는 삼..!'

 

 




참고로 나중에 1995 윤치호에 대한 친일협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윤치호 기념

사업회도 출범하였습니다. 하지만 친일파 708인 명단(2002)

수록되는 등 논란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윤치호의 장남 윤영선은 19950년 농림부장관을 지냈으며

1960 8월에는 윤보선(조카)이 제2공화국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윤치호가 일제에 회유와 억압 감금받은 것들을 

간단히 요약만 정리해 해보겠습니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복역합니다. (1912)

총독부에서 일왕명의로 목배를 주는데 거절합니다. (1914)

- 반성문을 쓰고 석방, 조건은 친일파입니다. (1915)

흥업구락부 사건 책임자로 일제로 부터 취조를 받습니다. (1938)

일본왕 행사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습니다. (1939)

어느날은 자객이 들어와 피습을 당하기도 합니다. (1945.8)


윤치호는 일제를 소극적으로 협력하게되는데 이의 배경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아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윤치호는

수많은 인신공격과 비난의 화살을 받습니다

친일파를 가장한 애...사였을까요?

여하튼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애국가를 작사한 

유력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애국가는 작자미상입니다.

당시 후렴구는 국민들이 다 불렀으며 앞부분은 상황에 맞게 개사를

했었는데 애국가 기본틀도 이렇게 국민의 누군가에 의해서 틀이

만들어 진것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1919 3 1일 윤치호의 일기를 보겠습니다.

"이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심이라는 미명하에

불을 보듯 뻔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변절보다는 약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똑똑해지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의를 뛰어 넘어서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문맹탈피를 해야하고 근본적으로 뿌리밖힌

생각과 근성이 바껴야 된다고 느꼈을 수 도 있습니다.








Posted by e-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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