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역사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한 AD70년 시점 이후

유대인들은 흩어졌다고 하는데요.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의 문화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헬라문화였는데요. 유대인들은 당시

유일신을 믿고 었습니다. 


로마는 성전 입구에 독수리상을 세웠을당시

유대인들은 반란을 지속적으로 일으켰고

이로인해 로마군이 개입되어 약 2천여명의

유대인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디.아.스.포.라

예수님의 탄생 몇 세기 전부터 팔레스타인을 떠나서

여러 도시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많았는데요.

이들을 디아스포라 즉, 분산 유대인이라 부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 제국 내의 모든 대도시에는

상당한 수의 유대인 공동사회가 자리잡고 있었죠.

단 이들은 선조의 언어인 희브리어를 망각하고

아람어와 헬라어를 사용했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부터 퍼져서 살았는데요.

B.C.721년 아시리아 침공으로 멸망하고

B.C587년 바벨론에의해 남유다까지 멸망을당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혼합절출주의가 유행했는데요.

여러 종교들을 무차별 혼합하는 종교적 혼합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황제숭배였습니다.


처음 로마는 기독교에 대해서 유대교의 한 당파로

알고 있었는데요. 유대 공동체의 유대인들에 의해 

기독교인에대한 잦은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물의가 커지자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름을 알게됩니다.


당시 철학으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스토아 학파가

있었는데요. 로마시대의 불완전한 수많은 신들을

비평하며 완전한 영혼 불멸의 절대적인 신을

주장한 학파였습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스토아 학파를 지지하며

참 하나님과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로마는 기독교를 무신교라고 불렀는데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유대인들은 매 년 예루살렘으로 

헌금을 보냈는데요.  A.D.70년 성전이 파괴되고난후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에게 바치도록 결정합니다.

이를 반항한 유대인들로 인해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무렵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로마의 3대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마,안티오키아에

살고있었으며 그 도시에 영향력도 상당했습니다.

본토 유대인에 비해 명성과 부가 많았었죠.


당시 본토의 유대인들에게는 각 도시에서 

윤택하게 살고있는 유대인들에게 반감이 컷다고합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들에겐 본토 팔레스타인은

신앙과 정신적인 고향이었습니다.





19C의 유대인들은 미국을 향해 떠났는데요.

사실상 도피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유대인들을 박해했습니다.

특히 나치로 인해 20C초에는 사회적인 높은 위치의

전문가들까지 모두 미국행 배를 타게되고

오늘날까지 미국의 상위 1%에 상당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Posted by e-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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