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을 점령한 프란시스코 피사로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업적으로써 유명한 이 정복자는 에스파냐의 직업 군인의 서자로 태어났었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평생토록 문맹으로 살았었고 정식 군사 훈련을 단 한번도 받아본 적도 없지만 12세부터 군대에 들어가서 빠른 속도로 전쟁 기술을 익혔다고 합니다.


피사로는 1502년 히스파니올라에 도착했었고 1513년에는 바스코 데 발보아의 파나마 탐험에 참여했습니다. 피사로는 1523년까지 총독부에서 근무하여서 재산을 모으고 있다가 북쪽에서 코르테스가 아즈텍족을 정복하여서 재산을 크게 늘렸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자신도 행운을 찾아서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잉카제국에 엄청난 보물이 쌓여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 피사로는 총독의 허락을 받은 뒤에 배를 타고서 계속 남쪽으로 항해를 했습니다. 첫번째 항해는 고생만 하고 끝났다고 합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두번째 항해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피사로는 두번째 항해에서 칼로 모래 바닥에 선을 긋고서는 '부와 명예'를 찾아나선 이 선을 넘어선 부하들만 데리고 탐험 길에 올랐다고 한다고 전해지는데요. 이 때에 합류했었던 부하는 13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많은 보물을 싣고 귀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사로가 군사 200명과 말 65마리를 데리고서 본격적인 탐험에 오른 것은 1531년이 되어서였다고 하는데요. 피사로는 이 탐험대와 함께 부와 명예를 얻고 불멸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사로는 오늘날 페루가 되는 대부분의 지역과 에콰도르, 칠레, 볼리비아 일부를 아우르게 되는 잉카제국을 정복을 하게되는 엄청난 업적을 세웠는데요. 그는 약탈의 거점으로써 리마라는 항구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사로는 그렇게 모은 재산으로써 제대로 영화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옛 동업자와 불화가 생겨 피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e-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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